게임개발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개발자 지망생들을 위하여
인생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필연적인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다양해집니다. 취업한 후에는 지원했던 회사나 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을 겁니다. 같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던 팀원들이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흩어진 경험도 했을 겁니다. 같은 업계에 취업했다 하더라도 어느 회사의 어느 팀인지에 따라, 그리고 멘토의 성향과 영향력에 따라 상당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겁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게임개발이라는 직업을 선택해서 업계에 발을 들인 개발자 지망생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몇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조언은 철칙도 아니고 금언도 아닙니다. 개발자로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하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기를 바랍니다. 이 조언은 제가 개발자 지망생이었을 때 듣고 싶었던 것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유형의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직업에 따라 상당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저는 직업을 생업(生業)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게임개발은 권력이나 재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개발자로서의 성공은 출시한 타이틀로 판가름됩니다. 자신의 직업을 중시한다면, 그 직업을 소득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래에 나열된 조언들은 제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조언들은 제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일자리는 있다" 고 확신하십시오. 개발자 지망생들은 구직난을 호소하지만, 개발사들은 구인난으로 애를 태웁니다. 개발자채용에 응모한 지망생들은 채용과정의 까다로움과 편견을 비판합니다만, 면접관들은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풋풋한 개발자 지망생들이 이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은 원래 반쯤 열려 있는 것입니다. 기회가 오기를 기원하면서 요구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는 데에 더 힘쓰십시오.
• 게임개발에 몰입하는 개발자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개발자 지망생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모형이 되어줄 스승, 선배, 동료, 후배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때에는 따라해 보는 방법이 효율적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면 되니다. 게임개발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개발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존경할 수 없는 개발자들을 직면했을 경우에는, 부정적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다시 말해서, 그 사람들과 다르기 위해 노력하면 (正道)로 갈 수 있습니다.
•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위대한 개발자보다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그렇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형으로 삼으십시오. 의식을 해야만 인식되는 사람은 일상적인 모형이 될 수 없습니다. 수시로 접하고 피할 수 없는 주변의 개발자들 가운데에서 모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모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에는, 여러분이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 때, 눈을 들어 조금 더 멀리 있는 모형이 되줄수 있는 개발자들을 찾으십시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분이 훌륭한 게임 개발자에 가까워집니다.
• 아직 게임개발을 생업으로 삼는데 망설임이 있다면, 가능한 조속히 결정해야 합니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게임산업은 승자독식의 구조라서 적당히 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택하지 않은 일에 매진할 리 없고, 매진하지 않는 일이 성공할 리 없습니다. 게임개발 업계에서의 업적은 창조의 결과입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것은 게으름을 연습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게으른 개발자는 개발에서 성공할 수 없으며, 게임개발업계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 개발보다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즐거운 일을 가진 사람은 개발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관련 기술논문을 읽었는데도 이해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마감은 닥쳐오는데 진척이 되지 않아서 피를 말리는 사태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예사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들은 개발을 합니다. 이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일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게임개발의 무시무시한 업무강도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일에 다가간다면, 개발자로서 적합합니다.
• 게임개발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인관계를 줄여야 합니다.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개발에 투입하는 시간은 다른 업무에 할당하는 시간과 영합(zero sum) 관계에 있습니다. 개발을 위한 시간을 늘리려면 반드시 다른 일들을 줄여야 합니다. 물론 대인관계도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게임개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게임개발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불행해집니다.
• 원치 않는 개발이라 할지라도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에 헌신하지는 마십시오. 젊은 개발자들은 어디에서 근무하든 여러 가지 업무 -흔히 잡무로 불리는 일- 에 투입됩니다. 선택할 수 있을 때에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그 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대개 젊은 개발자의 상사들로서, 젊은 개발자들이 일하는 자세를 눈여겨봅니다. 개발업계에서는 같이 일했던 동료가 평생 직업을 제공하거나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기 싫지만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성실해야 합니다.
• 공부를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십시오. 공부할때 가장 힘든 시기는 시작할 때입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올리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면 될 일을 굳이 핑계를 갖다 붙이면서 회피하곤 합니다. 이번 마감만 끝나고, 내일 부터, 오늘은 누구 만나야해, 이렇게 치일피일 미루다보면 어느새 경력은 쌓여가는데 실력은 멈춰있는, 그저그런 개발자로 도태되고 맙니다.
• 대작 블록버스터보다 습작에 충실하십시오. 타이틀을 출시하지 못하는 개발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작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들은 다른 개발자들의 게임을 시시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찮게 평가한 게임들과 비슷한 수준의 게임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마감과 출시시기를 놓치곤 합니다. 명작에 대한 소망은 개발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명작은 쉽게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작을 지향한 개발이라고 해서 명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개발을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 경험들이 쌓여지면서 명작이 가능해질 뿐입니다.
• 유명 개발사의 채용과정에서 탈락했더라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탑10 타이틀을 내놓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개발사의 채용경쟁은 매우 치열합니다. 이 문턱을 넘는 것은 10명중 1명이 채 안됩니다. 업계의 초보인 여러분이 중견 개발자들과 경쟁해서 이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를 짜내어 포트폴리오를 작성한 후 발송했더니 입사서류 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맞거나,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이면지로 활용될 수도 있으며, 최신 기술과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에 대해 문외한인 채용 담당자를 만나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불합격한 자신보다 훨씬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지원자가 채용되는 경우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사지원하는데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면접결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지 마시고, 빨리 실패하고 빨리 극복하기를 권합니다.
• 개발을 모르는 사람들은 개발을 쉽게 생각합니다. "앉아서 타이핑만 하면 된다" 고 생각합니다. 개발은 소일거리 처럼 컴퓨터 타이핑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게임 개발은 피를 말리는 작업입니다.
• 게임을 만들려면 책상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게임의 아이디어는 직감(hunch)에서 나올지 몰라도 게임 개발은 분명히 인내를 요구하는 노역입니다. 책상에 붙어 있으려면 책상에 소일거리를 준비해 두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디버깅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코드를 살펴보듯 비판적으로 살펴보십시오. 아무리 세심하게 작성하더라도 초기 설계에는 오류가 아주 많습니다. 이러한 오류들을 잡아내려면 작성한 코드를 남의 코드처럼 따져가며 봐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실전에서는 긴장한 나머지 평상시처럼 코드를 읽고 오류에 긴급하게 대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저들은 여러분의 게임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경쟁 타이틀로 옮겨갈 수 있으며 온라인 게임은 라이브체제에서 문제를 발견했을때 3시간 안에 대응하지 못하면 프로젝트 팀과 회사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합니다.
• 게임개발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반드시 개발업적을 갖추어야 합니다. 출시한 타이틀이 없다면, 게임업계에서 설 땅이 별로 없습니다. 부족한 개발업적을 다른 것들로 보완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떳떳하지도 않습니다. 쫓기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젊은 개발자들과 개발자 지망생들의 미래가 행복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여러 가지 개발모임에서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한국의 게임개발산업이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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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은 이화여대 오욱환 교수님의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라는 글입니다.
학자는 고달프군요. 공부하는 방법 참고 하려고 스크랩 하다가 게임업계에 맞춰서 고쳐써봤습니다.